1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끝났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런데 검사에게는 항소할 권한이 있습니다. 항소심이 1심의 판단을 함부로 뒤집지는 않습니다. 원칙은 1심을 존중하는 쪽이고, 1심 판단을 그대로 두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을 때 증거와 사실인정을 다시 따집니다. 문제는 그 예외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래 사건이 그랬습니다. 아청법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사건인데, 1심은 공소사실 전부를 무죄로 보았지만 항소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도, 새 목격자가 등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1심 무죄 2심 유죄로 결론이 바뀐 이유는 이미 기록 안에 있던 자료를 달리 읽었기 때문입니다.
1심 무죄 2심 유죄라는 결과는 드물지 않습니다. 무죄 판결문을 받아 든 뒤 검사의 항소장을 받은 분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안심도 낙담도 아니라 항소심이 무엇을 다르게 보는지를 정확히 아는 일입니다.
아청법 강제추행, 1심은 어떤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나
1심이 무죄로 본 근거는 다섯 가지였습니다. 상대방 진술이 객관적 정황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 핵심 대목이 처음에는 추상적이었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구체화됐다는 점, 진술 가운데 경험칙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는 점, 이를 뒷받침하는 동료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함께 있던 도우미의 진술에 따르면 추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방어 논리로 보면 교과서적입니다. 진술의 일관성과 정황 부합 여부를 파고들어 합리적 의심을 남기는 방식이고, 1심에서는 그것이 통했습니다. 문제는 항소심이 같은 다섯 가지를 하나씩 되짚었다는 데 있습니다.
Q.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사건이 끝난 것 아닌가요?
A. 확정되어야 끝납니다. 검사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수 있고, 항소심에서는 일정한 범위에서 증거와 사실인정이 다시 문제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아 두실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68조는 피고인만 항소한 사건에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검사가 항소한 사건에는 이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도 1심 무죄가 항소심에서 전부 유죄로 바뀌었고 형은 벌금이 아니라 실형이었습니다. 무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확정될 때까지는 방어를 이어 가야 합니다.
1심 무죄 2심 유죄, 항소심이 달리 본 근거
1심 무죄 2심 유죄로 결론이 바뀔 때 항소심이 새 증거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도 기록은 그대로였습니다. 판단을 받친 근거는 세 가지였고, 방어하는 쪽에서는 이 지점들이 항소심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그 밤에 지인들에게 보낸 메시지와 통화 내역이 있었습니다. 항소심은 이를 사건 진행 중에 남은 정황으로 보아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진술만 남은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게 만든 자료입니다.
1심은 세부가 나중에 구체화된 점을 문제 삼았지만, 항소심은 중심 사실이 일관되면 세부가 늦게 채워진 것만으로 배척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나중에 말이 늘었다」가 항상 통하지는 않습니다.
다음 날 출근하지 않고 곧 퇴사한 뒤 엿새 만에 고소했으며 금전을 요구한 정황이 없었습니다. 항소심은 허위로 진술할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1심이 「경험칙에 어긋난다」고 본 대목도 다시 읽혔습니다. 술자리를 나오며 상대가 건넨 어색한 농담이 문제였는데, 항소심은 이를 불편한 자리에 정면으로 항의하기 어려워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상대의 반응이 교과서적이지 않다는 사정만으로는 방어 논거가 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가벼운 접촉이라는 주장은 어디까지 통하나
피고인은 어깨동무나 허벅지에 손을 올린 행위는 추행이 아니라고 다투었습니다. 항소심의 답은 그것도 추행에 해당한다였습니다. 추행 여부는 접촉한 부위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상대의 나이와 성별, 두 사람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구체적 태양, 주위 상황을 함께 놓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강제추행에는 기습추행도 포함됩니다. 폭행 행위 자체가 곧 추행인 경우를 말하는데, 이때 힘의 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강하게 붙잡지 않았다」거나 「상대가 적극적으로 뿌리치지 않았다」는 사정은 성립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기 어렵고, 오히려 직장 상하관계라는 사정이 저항하기 어려웠던 이유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상대가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면 달라지나요?
A. 법원은 말만 듣지 않고 정황으로 판단합니다. 외모와 말투, 학교와 관련된 대화, 만나게 된 경위, 나이를 확인하려 했는지 같은 사정을 함께 봅니다. 그리고 확실히 알았을 때만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기면서 그대로 넘어간 경우까지 고의로 봅니다. 이 사건에서는 면접을 직접 보고 이력서를 검토했으며 나이를 전해 들었다는 점이 인정돼 주장이 배척됐습니다. 다만 반대로 객관적으로 미성년으로 보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알았다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유죄가 되면 형 말고 무엇이 따라오나
이 사건에서 선고된 것은 징역 2년만이 아니었습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5년간 취업제한, 신상정보 등록 의무가 함께 붙었습니다. 다만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고지하는 명령은 면제됐습니다. 성폭력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 실형과 등록·이수명령만으로도 재범을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취업제한 역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선고하지 않을 수 있어 부가 처분은 사건마다 따로 판단됩니다.
형이 무거워진 데에는 상대가 직장 부하이자 청소년이었다는 점, 끝까지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은 점, 용서받지 못한 채 상대가 엄벌을 탄원한 점이 놓였습니다. 반대로 유리하게 본 사정은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한 점, 동종 전력이 없는 점,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점이었습니다. 사건 이후의 태도가 양형에서 상당한 비중으로 참작될 여지가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형법상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징역형에 하한이 없지만, 상대가 아동·청소년이면 아청법 강제추행이 되어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올라갑니다. 벌금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한이 1천만 원이라, 형법상 강제추행의 벌금 상한(1,500만 원)에 가까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아동·청소년은 19세 미만을 말하되,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은 사람은 제외됩니다. 생일이 아직 안 지났어도 그 해 1월 1일이 지났으면 이 조항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라, 나이를 세는 방식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상대가 13세 미만이면 성폭력처벌법이 적용돼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Q. 지금이라도 합의하면 결과가 달라지나요?
A. 강제추행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닙니다. 폭행이나 협박, 명예훼손처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죄가 따로 있는데, 강제추행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합의가 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공소가 당연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피해 회복과 처벌불원 의사는 양형에서 고려되는 요소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용서받지 못한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합의를 시도할지, 한다면 어떤 방식과 시점이 적절한지는 사건 단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직접 접촉하기보다 절차를 거치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 판결이 보여 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심 무죄가 결론이 아니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항소심이 판단을 바꿀 때 쓰는 재료가 새 증거가 아니라 이미 기록에 있던 정황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단계에서 할 일도 정해집니다. 검사가 항소 이유를 적어 낸 서면의 지적을 하나씩 놓고 기록의 어느 부분이 그 지적을 받치는지 확인하는 일, 1심에서 다투지 않았던 부분에 설명이 필요한지 살피는 일, 그리고 양형에서 참작될 사정을 지금부터 갖추는 일입니다.
박준우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을 오랫동안 맡아 왔습니다. 1심 기록과 검사가 낸 항소 이유 서면을 함께 놓고 어느 지점이 다시 문제 될지 짚어 대응 순서를 잡아 드립니다. 혼자 판단이 어렵다면 아래 번호로 상담을 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