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 변제계획을 다 이행하고 2021년 1월에 면책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년 반쯤 지나 예전 채권자가 찾아와 그래도 원금은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매달 150만 원씩 갚겠다는 각서를 써 주었습니다.」 이렇게 써 준 종이 한 장 때문에 1억 원을 다시 갚아야 하는지가 다투어진 사건이 있습니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그 약정에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면책 후 각서가 어떤 때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되고 어떤 때 무효가 되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판결입니다.
· 면책이 끝난 뒤 채권자가 찾아와 각서를 써 달라고 해서 써 준 경우
· 각서를 쓰고 이미 몇 달째 돈을 보내고 있는 경우
· 채권자가 그 각서로 압류를 하겠다고 말한 경우
· 아직 쓰지 않았고 지금 써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경우
면책 후 각서는 언제 효력을 가지나
면책결정이 확정되면 그 빚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받아 낼 수 없는 빚으로 바뀝니다. 법에서는 이를 자연채무라고 부릅니다. 채권자가 소송을 걸어도 법원이 지급을 명해 주지 않고 압류도 할 수 없지만, 채무자가 스스로 갚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 상태입니다. 채무자회생법 제625조 제2항이 면책을 받은 채무자는 개인회생채권에 관한 책임을 면한다고 정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그 뒤에 다시 갚겠다고 약속한 경우입니다. 이런 합의를 채무재승인약정이라고 합니다. 면책으로 벗어난 책임을 채무자가 다시 지겠다고 승인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다 인정해 주면 면책제도가 있으나 마나 해집니다. 채권자가 면책 뒤에 찾아가 각서 한 장만 받아 두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그 약정이 면책제도의 취지를 허무는 것인지부터 보고, 그다음 두 가지가 함께 확인될 때만 효력을 인정합니다. 하나는 채무자가 면책된 빚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스스로 원해서 약속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이 채무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이 개인파산 사건에서 세워 둔 기준인데, 이 사건 법원도 개인회생 면책에 그 기준을 그대로 가져와 판단했습니다. 판단할 때는 각서를 쓰게 된 동기와 목적, 작성 시기와 경위, 그 무렵 채무자의 재산과 수입을 함께 봅니다.
구분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각서를 면책결정이 나기 전에 썼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개인회생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변제계획과 별도로 갚겠다는 뜻을 밝혔더라도, 그것이 기존 빚과 전혀 다른 새 빚이라고 볼 사정이 없으면 원래 채무와 함께 면책된다고 보았습니다. 면책 전에 쓴 각서는 면책으로 같이 정리되고, 면책 뒤에 쓴 각서만 아래에서 볼 자발성과 부담 심사를 받습니다.
Q. 서명하고 날인까지 했으면 어쨌든 약속은 약속 아닌가요?
A. 보통의 계약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면책은 채무자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려고 법이 만든 제도여서, 그 효과를 되돌리는 합의는 따로 심사를 받습니다. 서명과 날인이 있어도 자발성과 부담 정도를 다시 따진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서명한 문서가 없더라도 문자나 녹음으로 갚겠다고 한 사실이 남아 있으면 같은 심사 대상이 됩니다.
법원이 이 각서를 무효로 본 근거
이 사건 채무자는 2015년 10월 법원에서 개인회생 절차를 시작하는 개시결정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 앞으로 몇 년간 얼마씩 갚을지 적은 변제계획을 인가받았습니다. 그 계획을 끝까지 이행해 2021년 1월 남은 책임을 면해 주는 면책결정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으로 끝난 절차입니다. 그런데 채무자는 변제계획과 별도로 2022년 6월까지 그 채권자에게 8,060만 원을 더 갚았고, 그 무렵 채권자에게 7,000만 원을 매달 150만 원씩, 채권자의 동생에게 3,000만 원을 매달 원금 50만 원과 이자 15만 원씩 갚겠다는 각서를 써 주었습니다. 합계 1억 원입니다.
법원은 이 면책 후 각서를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는 세 가지가 겹쳐 있었습니다.
하나는 작성 시점과 계기입니다. 면책결정이 확정되고 1년 5개월가량 지난 뒤에, 채권자의 요청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법원은 짚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발적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각서를 쓰게 된 경위와 그 뒤의 경과를 놓고 보면, 채무자가 면책된 빚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 앞으로 법적인 변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각서를 작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금액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사정이 더해졌습니다. 각서에 적힌 채무액은 1억 원인데, 채무자가 운영하던 점포의 소득금액은 2022년 4,097만 원, 2023년 658만 원이었습니다. 이 정도 수입으로 1억 원을 갚는 것이 과도한 부담이 아니라거나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각서 금액이 내 형편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같은 소득과 가구원 수로 개인회생을 진행했을 때 매달 얼마를 갚게 되는지 숫자로 뽑아 대조해 볼 수 있습니다. 그 금액과 각서에 적힌 월 납입액을 나란히 놓으면 부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미 갚은 8,060만 원은 돌려받을 수 있나
이 사건 채무자는 면책을 받은 뒤에도 8,060만 원을 실제로 갚았습니다. 각서가 무효라면 그 돈도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자연히 따라옵니다.
돌려받기는 어렵습니다. 면책된 빚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강제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빚이라, 채무자가 스스로 낸 돈은 있는 빚을 갚은 것이 됩니다. 채무가 없음을 알면서 갚은 돈은 돌려 달라고 할 수 없다고 정한 민법 제742조가 있어서, 없는 빚에 잘못 낸 돈으로 보아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판결에서도 이미 낸 8,060만 원의 반환은 다루어지지 않았고, 채무자가 구한 것은 각서에 따른 앞으로의 채무가 없다는 확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각서를 쓰고 돈이 나가기 시작하면 나간 부분은 되찾기 어렵고 남은 부분만 다투게 됩니다. 각서를 썼다는 사실보다 그 뒤에 얼마를 냈는지가 지킬 수 있는 범위를 정합니다.
Q. 채권자가 각서를 근거로 압류를 하겠다고 합니다.
A. 각서 한 장만으로는 압류를 할 수 없습니다. 압류에는 확정판결이나 확정된 지급명령,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공정증서처럼 집행력을 갖춘 문서가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각서를 공증사무소에서 공정증서로 만들어 두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각서를 쓸 때 공증사무소에 함께 갔는지를 확인해 보시고, 그런 문서가 이미 있다면 청구이의의 소를 내면서 그 집행을 잠시 멈추는 집행정지 신청을 함께 내는 방법을 검토하게 됩니다.
채권자가 소송을 냈을 때 어떻게 정리됐나
소송을 먼저 낸 쪽은 채무자입니다. 각서에 적힌 돈을 앞으로 갚을 의무가 없다는 확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채권자가 같은 재판에서 맞소송을 걸어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피고가 같은 재판에서 거꾸로 거는 소송을 반소라고 합니다.
채권자가 든 청구는 둘이었고 순서가 있었습니다. 먼저 「각서와 상관없이 원래 빌려준 돈을 달라」며 7,152만 원을 청구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각서에 적힌 대로 1억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앞의 7,152만 원은 채권자가 자기 계산으로 적어 낸 금액입니다. 그 청구가 아래에서 보듯 문턱에서 막히는 바람에, 그 계산이 맞는지는 법원이 따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채권자의 두 청구를 각각 다른 이유로 물리쳤습니다.
| 채권자가 달라고 한 것 | 법원의 처분 | 이유 |
|---|---|---|
| 차용금 7,152만 원 | 각하 | 이미 면책된 빚이라 판결을 받아 내도 강제할 수 없다. 재판으로 지켜 줄 이익이 없다 |
| 각서 금액 1억 원 | 기각 | 각서 자체가 무효다 |
각하와 기각은 다릅니다. 각하는 내용을 따지기도 전에 「이 재판에서 다툴 사안이 아니다」라며 문을 닫는 것이고, 기각은 내용을 들여다본 뒤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채권자로서는 앞의 청구가 문턱에서 막혔고, 뒤의 청구는 들여다본 끝에 졌습니다.
결과는 채무자의 승소였습니다. 채무자가 구한 부존재확인은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채권자의 두 청구는 모두 물러났습니다. 소송비용도 본소와 반소를 합해 전부 채권자가 부담하게 됐습니다.
채무자에게 남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각서에 적힌 1억 원은 한 푼도 갚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앞에서 본 대로 이미 낸 돈은 돌려받지 못합니다. 이 판결이 지켜 준 것은 앞으로 나갈 돈이지 이미 나간 돈이 아닙니다. 각서를 쓴 뒤 시간이 지날수록 지킬 수 있는 몫이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각서를 이미 써 준 상태라면 확인할 것
면책 후 각서, 그것을 이미 써 주었더라도 상황이 닫히지는 않습니다. 확인할 것이 몇 가지로 나뉩니다.
각서를 채권자가 요구해서 쓴 것이라면, 언제 어떤 말을 들었는지가 그대로 근거가 됩니다. 문자와 통화 녹음, 만난 날짜를 모아 두면 자발성 판단에서 쓰입니다. 반대로 본인이 제안한 것이라면 그 사정은 유효 쪽으로 작용하므로, 금액과 소득의 관계를 다투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됩니다.
각서 금액이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경우에는 무효를 다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때는 금액을 조정하는 협의나 일부 변제로 마무리하는 방법을 함께 봅니다. 거꾸로 소득이 거의 없거나 각서 금액이 연 소득을 크게 넘는다면 이 사건과 같은 다툼이 가능합니다. 소득금액증명원과 사업장 매출 자료가 그때의 핵심 자료입니다.
각서가 공정증서로 만들어져 있다면 순서가 달라집니다. 집행이 먼저 들어올 수 있어서, 청구이의의 소를 내면서 그 집행을 멈추는 신청을 같이 넣게 됩니다.
이 판결에서 남는 것은 같은 각서라도 효력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면책 뒤에 쓴 각서라도 채무자가 스스로 원해서 썼고 부담이 감당할 만하면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되지만, 채권자가 찾아와 요구했고 금액이 소득을 크게 넘는 사안이라면 그 약정은 효력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면책 확정 1년 5개월 뒤 채권자의 요청으로 쓴 1억 원짜리 각서가, 연 소득 4,097만 원과 658만 원이라는 실제 형편 앞에서 무효로 판단됐습니다. 각서를 써 주고 독촉을 받고 있다면 각서에 적힌 금액이 아니라 그것을 쓰게 된 경위와 그 무렵의 소득 자료가 실제로 다툴 재료입니다.
조정현 변호사는 개인회생 면책을 받은 뒤 예전 채권자에게 다시 청구를 받은 분들의 사건을 꾸준히 맡아 왔습니다. 이런 사건은 각서에 적힌 금액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각서를 쓰게 되기까지 채권자와 어떤 말이 오갔는지, 그 무렵 소득이 얼마였는지, 각서가 공정증서로 넘어가 있는지를 함께 짚어 정리합니다. 어디까지 대응해야 하는지 혼자 판단이 어렵다면 아래 번호로 편하게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