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 9억 청구가 전부 기각된 5가지 이유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 9억 청구가 전부 기각된 5가지 이유

치과에서 흔한 발치 시술을 받았을 뿐인데 시술 도중 뇌출혈이 발생하고, 좌측 중증 부전마비로 평생을 살게 되었다면, 가족 입장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의료사고”입니다. 그러나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은 결과가 끔찍하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성립하지 않습니다. 주요 증거가 환자 측에서 확보·제출되는 경우가 많고, “이 의사의 행위에 과실이 있었다”는 점을 환자가 증명해야 비로소 손해의 문이 열립니다. 본 글은 9억 8천만 원을 청구했다가 항소심에서 전부 기각된 대구고법 2023나18783 판결(2025. 7. 22. 선고)을 토대로, 환자가 시술 직후부터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를 의뢰인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 4가지 축 — 진단·시술·경과관찰·설명의무 (대구고법 2023나18783)

의료사고는 평범한 발치 시술 한 번으로도 인생을 뒤집어 놓습니다. 응급실에서 뇌내출혈 진단을 들은 가족은 막막합니다. “가족은 의료사고를 의심하지만, 의사는 이미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손해사정인은 “환자에게 원래 있던 병(기왕증)이 결과에 미친 영향이 커서 손해배상 인정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사이 의무기록 사본 발급 신청은 미뤄지고, CCTV 영상은 보존 기한이 흘러갑니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고, 본 사건처럼 잘못된 결정은 항소심에서 9억 청구가 0원으로 뒤집히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 책임은 결국 환자에게 있다

의료 분쟁의 출발점은 “의사가 과실을 증명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환자(원고)가 의사의 과실 존재를 증명해야 합니다. 대법원 2011. 7. 14. 선고 2009다101916 판결, 2019. 2. 14. 선고 2017다203763 판결 등에서 확립된 법리입니다. 결과가 중대하다는 사정만으로 의사에게 무과실 입증 책임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환자가 의료 영역의 전문성을 모두 갖춰 입증하기는 어려우므로, 법원은 보완 장치를 둡니다. 일반인 상식으로 봤을 때 의료행위 과정에 잘못이 있었고, 그 잘못과 결과 사이에 다른 원인이 끼어들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면, 법원이 인과관계를 “있다”고 추정해줍니다. 또한 의료 과실 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 자료(간접사실)가 충분히 쌓이면, 결과가 의료 과실에서 비롯됐다고 추정될 여지가 생깁니다.

핵심은 “추정”이 작동하기 전에 환자가 정황 자료를 먼저 깔아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황 자료가 빈약하면 추정은 작동하지 않고, 그 결과는 청구 기각입니다. 9억 8천을 청구해도 입증의 입구에서 무너지면 0원입니다. 다만 결과가 중하다는 점만 가지고 막연히 의사 과실을 추정해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본인이 무과실임을 증명하라”고 짐을 옮기는 것까지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대법원이 함께 설시합니다(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2다41069 판결).

대구고법 2023나18783 판결, 9억 청구가 어떻게 무너졌나

사실관계는 단순합니다. 환자가 치과의원에서 31번 치아와 27번 치아 발치 시술을 받던 도중 봉합 단계에서 왼쪽 팔·다리 마비 증상을 보였습니다. 119 이송 후 뇌내출혈로 진단되었고, 혈관조영술 결과 우측 중대뇌동맥에 4mm 비파열성 뇌동맥류가 발견됩니다. 환자는 좌측 중증 부전마비가 남았고, 일실수입(다치지 않았다면 벌었을 수입)·치료비·개호비(거동이 불편해 받아야 하는 돌봄 비용)·위자료 등 합계 9억 8천 3백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1심은 환자 측 일부 인용. 그러나 항소심은 전부 기각입니다. 항소심이 환자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네 영역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 진단·시술 결정 단계: 치과의사가 문진으로 고혈압·당뇨 등 전신병력 없음을 확인했고, 환자 본인도 손해사정인 질문서에서 “기저질환 없음, 완전히 건강했다”고 기재. 진단 과정에서 주의를 다하지 못한 잘못은 인정되지 않음.
  • 시술 과정: CCTV 영상에서 통상적 수준을 넘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는 정황이 확인되지 않음. 마취제 성분(리도카인+에피네프린)도 혈압 상승의 원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감정 결과.
  • 경과관찰·전원조치: 환자가 불편감 표시 후 약 25분간 치위생사 부축·혈압 측정·휴식 시도. 119 호출 후 응급실 이송. 치과의사에게 뇌내출혈을 곧바로 의심하라는 기대는 무리.
  • 설명의무: 고혈압 없는 환자의 발치 시술에서 뇌내출혈은 통상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므로 설명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J의료원 감정 결과에서 기왕증(사고 이전부터 있었던 질병 — 고혈압성 동맥경화로 인한 중대뇌동맥류) 기여도가 75%로 추정되었습니다. 즉 발치 시술 도중의 통증이 한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은 인정되지만, 주된 원인은 환자가 본인도 모르고 있던 뇌동맥류였다는 의학적 평가입니다.

환자가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에서 놓치는 4가지 축

본 판결을 환자 측 관점에서 거꾸로 읽으면,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이 어디서 무너지는지가 보입니다. 네 가지 축을 시술 직후 단계부터 챙겨야 합니다.

첫째, 진단 단계. 의사가 시술 전 어떤 문진을 했는지, 어떤 설문지를 받았는지가 핵심입니다. 본 사건에서는 치료기록표 표지 설문지(고혈압·심장질환·당뇨·뇌졸중 항목)와 “전신병력 없음 확인 후 술식 진행” 기재가 의사 측 방어의 결정 증거로 작용했습니다. 의무기록 사본은 시술 직후 즉시 발급 신청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둘째, 시술 단계. 통증 호소가 있었는지, 의사 반응이 어땠는지는 CCTV 영상 외에는 사후에 재구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본 판결도 CCTV 영상이 “통상적 수준을 넘는 극심한 통증” 정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근거로 작동했습니다. 의료법 제38조의2에 따른 수술실 CCTV 촬영물은 30일 이상 보관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일정 요건에서 보관연장·열람·제공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의료법 시행규칙 제39조의15·제39조의17). 다만 본 사건처럼 일반 진료실 CCTV는 설치 목적·운영 근거에 따라 보존·열람 규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시술 도중 이상이 발생했다면 즉시 보존 요청과 사본 확보를 진행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안전합니다.

셋째, 경과관찰·전원조치 단계. 이상 증상 발생 시점부터 119 호출까지의 시간, 그 사이 조치 내용이 핵심입니다. 본 판결은 약 25분간 상태 확인·혈압 측정·휴식이 이뤄졌고 119 도착 시 의식이 명료했다는 점을 의사 측 방어로 받아들였습니다. 응급실 도착 후 혈종배액술까지 약 2시간 30분 소요된 점은 오히려 “이 정도 시간이 상태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감정 결과를 끌어냈습니다.

넷째, 설명의무. “이런 위험을 미리 설명받았다면 시술을 안 받았을 것”이라는 흔한 주장은 법원에서 잘 통하지 않습니다. 설명의무는 통상 예견 가능한 위험에 미치는 것이 원칙이고, 일반적으로는 희소성만으로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 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8다217974 판결). 다만 이 사건에서는 본인도 모르는 4mm 뇌동맥류로 인한 뇌출혈 위험이 발치 시술의 통상 예견 위험이라고 볼 자료가 없다고 보아 설명의무가 부정되었습니다.

기왕증 기여도 시뮬레이션, “75%”가 뜻하는 것

의료 분쟁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가장 오해받는 개념이 기왕증 기여도입니다. “기왕증 기여도 75%”는 손해액의 25%는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 사건에서도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기여도가 작동하는 구조는 두 단계입니다. 먼저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야 손해 산정에서 기왕증 기여도가 반영되어 배상액이 감액됩니다. 의사의 과실이 처음부터 인정되지 않으면 기왕증 기여도는 감액 논의 자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본 판결에서 기왕증 75%는 “원고 측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보강하는 정황으로 사용되었을 뿐, 25% 인용의 근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원심처럼 책임제한(법원이 손해 산정 단계에서 의사 책임을 일부 깎는 것 — 예: 피고 책임 20%)으로 손해액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어, 기왕증 비율이 그대로 인정 비율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함께 봐 둘 만합니다.

따라서 “어차피 기왕증 있어도 25%는 받겠지”라는 안일한 계산으로 소를 제기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과실 입증의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 사안인지 판단한 다음, 그 입증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경우에만 손해액 시뮬레이션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변호사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신호

의료 사건은 시간과 자료의 싸움입니다. 다음 신호가 보이면 가능한 한 빨리 의료 사건 경험 있는 변호사에게 검토를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첫째, 시술 직후 의무기록·CCTV 보존이 막힐 조짐이 보일 때. 병원이 사본 발급을 미루거나 CCTV 보존 기한 안내 없이 시간이 흐르면 가장 중요한 증거가 사라집니다. 수술실 CCTV에 적용되는 영상정보 규율(의료법 시행규칙 제39조의15·제39조의17)에서는 보관연장·열람·제공 절차가 정해져 있고, 일반 진료실 CCTV도 의료기관에 보존 요청서를 제출해 삭제를 막아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둘째, 손해사정인·보험 담당자가 “기왕증 비율이 높아 인용이 어렵다”고 안내해 올 때. 손해사정인의 평가는 보험 산정 기준이지 법원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본 판결처럼 기왕증 기여도가 입증의 입구에서 환자 측에 불리하게 작동할 수도, 일부 사건에서는 손해액 감액 정도로만 그치기도 합니다.

셋째, 1심 일부 인용 후 상대가 항소한 경우. 본 판결은 1심 일부 인용이 항소심에서 전부 기각으로 뒤집힌 전형 사례입니다. 감정 결과 추가·사실조회 보강으로 항소심에서 판단이 바뀌는 비율이 의료 사건에서 특히 높습니다.

본 판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의료과실 손해배상 입증의 입구를 통과하지 못하면 결과의 비참함은 청구액 산정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시술 직후 어떤 증거를 어떤 순서로 확보하는지가 최종 결과를 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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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5 questions

시술 도중 발생한 사고인데 왜 환자가 의사 과실을 증명해야 하나요?

대법원이 확립한 의료 소송의 입증 책임 분배 원칙입니다. 결과가 중대하다는 사정만으로 의사에게 무과실 증명 책임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반인 상식에 비추어 과실 있는 행위와 다른 원인 부존재가 증명되면 인과관계는 추정되며, 간접사실이 충분히 쌓이면 결과 발생이 의료 과실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될 여지가 생깁니다.

기왕증이 있는 환자도 의료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나요?

받을 수 있지만 두 단계가 필요합니다. 먼저 의사 측 과실이 입증되어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한 다음, 손해 산정 단계에서 기왕증 기여도만큼 배상액이 감액됩니다. 의사 과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기왕증 비율과 무관하게 0원입니다.

의무기록과 CCTV는 언제까지 보존되나요?

의무기록은 의료법상 진료기록부·간호기록 등이 5년~10년 보존되나, CCTV는 통상 1~2개월 내 자동 삭제되는 곳이 많습니다. 시술 도중 이상이 발생했다면 시술 당일 또는 그 다음 날 CCTV 보존 요청 공문을 보내고 사본을 확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손해사정인이 '기왕증 비율이 높아 인용이 어렵다'고 하면 소를 포기해야 하나요?

손해사정인의 평가는 보험 산정 기준이며, 법원 판단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본 판결처럼 기왕증 기여도가 입증의 입구에서 환자 측에 불리하게 작동하는 사안도 있으므로, 의무기록·감정 가능 여부를 종합 검토한 변호사 의견을 받은 다음에 결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1심에서 일부 인용을 받았는데 상대가 항소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나요?

본 사안처럼 1심 인용이 항소심에서 전부 기각으로 뒤집히는 사례가 있습니다. 항소심에서는 감정 결과 추가·사실조회 결과 보강이 결정적입니다. 1심 감정의 한계점을 정리하고, 보강 감정·사실조회 신청 전략을 미리 설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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